사육과 양육,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사육과 양육의 차이가 '기다림'의 유무에 있다고 본다.
사육자는 피사육자를 절대 기다려 주지 않는다. 거기에는 사육자의 시간만 있을뿐이다.
사육자는 정해진 시간까지 목표한 만큼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달걀을 얻어야 하는 사육자는 닭에게 잠 잘 시간을 주지 않는다.
24시간 형광등 불빛을 밝혀둔다. 정해진 사육일까지 일정한 무게의 고기를 얻어야 하는 돼지는
사육자가 정한 비좁은 공간 안에서만 생활해야 한다.
닭과 돼지 모두 아픈 곳이 없어도 매일 일정량의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
사육은 과잉 공급이다. 내 자녀를 과보호하는 것도 사육의 한 모습이다.
어린 나무에 거름을 지나치게 많이 주면 그 나무는 녹아 없어진다.
'기다려 주라!'
자녀를 그냥 내버려두면 잘못될 것 같은 조바심 때문에 우리 엄마들은 주머니 속에 든 헌신과 애정의 리모콘을 만지작거리다가
끝내는 자녀의 가슴을 겨누어 엄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리모콘을 조작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엄마 말 참 잘 듣는다'고 칭찬받던 아이가 갑자기 문제아로 찍히는 경우가 대부분 이런 경우다.
유년의 아이는 엄마의 리모콘에 따라 움직일 수도 있겠지만 독수리보다 더 넓고 큰 자유의 날개를 가진 우리 청소년들은
절대 엄마의 리모콘으로 컨트롤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녀의 정신적 성장을 기다리지 못하고 조바심이 날 때마다 엄마의 리모콘을 꺼내드는 행위는 분명 양육이 아닌 사육이다. 나는 이 땅의 모든 엄마들에게 농부의 기다림으로 자녀를 양육하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