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면 하루도 빠짐 없이 들려오는 소식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회 소외층에 속한 이들이 기본적인 원칙과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로 자본의 소모품이 되어 죽어간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사회 유명인사들의 죽음 소식 역시 종종 듣게 된다. 몇집 건너 이웃의 죽음을 보게 되고 그다지 멀지 않은 지인이 죽을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런 죽음의 소식은 우리에게 별다른 마음의 진동을 주지 않는다. 왜 그런가?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좁혀서 얘기하자면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과 나의 삶이 어디쯤에서 연결되어 있는지, 그 지점을 도무지 찾을 수 없을 때 인생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인 죽음조차도 우리에게 의미를 갖지 못한다.
사랑하는 이의 감기나 고열에도 우리는 음식과 약으로 도움을 주려 한다. 이웃이 굶고 지내는 것보다 남편이나 연인의 사업 부진이 더 큰 문제이다. 상황은 객관화 되지 않는다. 언제나 그 상황을 보고 받는 이의 관점으로 주관화되어 인식된다. 이것은 인간 관계의 비극인 동시에 또한 성도에게 있어 마지막 위로이자 희망이기도 하다. 나의 상황에 뛰어드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인식은 늘 이 작은 인생에 독생자 예수를 던지신 사랑으로 주관화 되어 작동하기 때문이다. 나를 보아달라고 아무리 소리치고 애원해도 사람들에게 그 위로와 사랑을 경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그분은 나의 작은 신음에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이사야 2:22)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4:15)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신다고 기록한다. 영어 단어로는 'sympathy'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헬라어 'sym'과 'pathos'의 합성어이다. "함께 고통당하다"라는 의미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성경은 함께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삶을 관조하지 않으신다. 마치 욥의 삶에 폭풍우와 함께 뛰어들어 개입하시듯이 그분은 우리의 삶에 개입하고 함께 하신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욥기 38:1)
사랑하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고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아프면 내가 더 아프고 그가 죽어가면 어떻게든 살리려 하고 마지막을 지키려 한다. 자신들의 죄악에 스스로 망해가는 인류의 마지막에 독생자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뛰어들어 오셨다. 그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하는 피조물의 삶에 함께 함으로 증명되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이 외롭고 고단한 시간을 지날 때 충분하고 괜찮다고 말하는 믿음은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버겁다. 심지어 선지자 엘리야조차도 갈멜산의 그 위대한 영적 전투의 승리 후에 이세벨의 말 한 마디에 마음을 놓치고 그 인생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토로한다. 죽음을 앞에 둔 선지자의 고백에서 우리는 인생이 갖는 본질적인 약함과 고독함을 본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열왕기상 19:10)
'오직 나만 남았거늘'이라고 신음하듯이 기도를 뱉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왜 믿음이 없냐고 질책하지 않으셨다. 만군의 여호와가 함께 있으면 충분하지 않냐고 강요하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먹이고 쉬게 하시며 그와 함께 하는 이들이 있음을 엘리야에게 알게 하신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열왕기상 19:18)
인생을 홀로 두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함께 하는 이들을 두시고 그들과 함께 사랑과 공감을, 신뢰를 나누게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함께 있음으로 증명되었고,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이들은 그 자체로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고통당하는 이들과, 마음과 육신의 질병으로 죽어가는 이들과 우리가 나누는 사랑은 함께 울고 함께 하는 것, 그것으로 표현된다.
십대교회 박준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