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 Bible 2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어릴 때 어머니 손잡고 교회에 가면 수요일 저녁예배 시간마다 부르던 찬송가 가사이다. 형통(亨通)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어감대로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삶의 시간마다 번영과 만족을 누리는 상황이 주어지는가? 성도의 현실을 직시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흔하게 발견되곤 한다. 하나님의 약속이 거짓인가? 우리의 믿음에 문제가 있는가?
구약 성경에 68회나 인용되어 있는 ‘형통’이라는 단어는 흔히 ‘좋은 일’, ‘복된 일’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에게 ‘좋고 복된 일’은 무엇일까? 창세 전에 예정하신 창조주의 뜻이 피조물에게 담겨지고 열매 맺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만 비로소 성도는 ‘형통’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한 인간을 ‘인간’되게 하시며 성도의 현실에 ‘자녀의 영광’을 심어가시는 과정, 그 모든 시간과 공간을 통해 태초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는 일련의 모든 굴곡을 성경은 ‘형통’으로 표현하며 그 길의 끝에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한 공동체의 회복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형통’을 보여주는 한 사람을 꼽자면 바로 ‘요셉’이다. 편애하는 아버지 ‘야곱’의 손에 자라면서 형들에게 미움 받고, 결국 친형제의 손에 노예로 팔려간다. 노예의 현실에서 그 인생의 나락은 멈추지 않고 주인의 아내를 강간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갇힌다. 언제 자유의 몸이 될지, 언제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어떠한 기약도 없이 답답한 시간을 지나는 요셉의 인생을 향해 성경은 ‘형통’하다고 설명한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세기 39:2)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세기 39:23)
뭐 이런 형통이 있단 말인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자의 삶에 나타난 형통은 요셉의 삶을 노예에서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 물론 감옥에서 꺼내놓는 형통도 아니었다. 형통해서 노예로 팔려가고, 형통해서 감옥에 갇혀 있는 요셉. 그의 인생에 나타난 형통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하기 어려운 요셉의 현실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좋고 복된 일’을 이루신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좋고 복된 계획이 요셉의 삶을 통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30살 이상의 남자만 60만에 이르는(약 200만명으로 추정되는) 인구를 이끌어내기까지 하나님은 약 400년 만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약속을 이루신다. 요셉이 총리로 있을 당시에 7년의 풍년 후에 닥치는 7년의 흉년 기간에 이집트 인근의 모든 나라들이 그로 인하여 흉년의 고통을 벗어난다. 가장 놀랍게는 요셉을 미워하여 자신들의 친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조차도 요셉을 통해 기근의 위협을 벗어나고 당대 최강의 국가인 이집트에 특혜를 받고 정착하게 된다.
요셉의 삶에 나타난 ‘형통’은 그 과정, 순간순간을 보면 도무지 형통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이 지나 인생의 의미가 깨달아질 때가 되면 한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섭리하셔서 우리가 다 통찰할 수 없는 큰 그림을 가지고(이를 역사(歷史)라고 한다.) 그 일의 결국에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어내시는 능력을 보게 된다. 형제 사이에서 발견되는 미움과 원망, 역설적이게도 그 부정적 요인을 통해 요셉의 삶을 높이 드시며 그를 노예로 팔아넘긴 형제들을 비롯한 인근 국가의 모든 이들이 복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성경은 형통(亨通)이라고 표현한다.
오늘 나와 당신의 삶에 경험되는 모든 한계와 부정적 요인들, 이미 저질러버린 부끄러운 기억과 엎질러진 물 같은 상황들,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형통’을 이루신다. 그리고 우리의 형통을 통해 우리 주변에 있는 이들도 결국 하나님의 ‘좋고 복된 일’에 들어오게 하신다. 무지한 죄인들을 통해 이 놀라운 형통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놀랍지 않은가?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보다 크시며 지혜로우시다.
십대교회 박준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