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 Bible 3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위기 26:12)
성경은 우리가 아는 대로 ‘구약’(Old Testament)와 ‘신약’(New Testament)으로 이루어져 있다. “Testament”라는 단어 자체가 의미하듯이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 기록된 책이다. 창조주께서 당신의 피조물과 맺은 언약이 우리의 언약과 다른 점은 구원을 이루시고 하늘의 백성 삼으시는 면에 있어 본질적으로 편무(片務)계약이라는 점이다. 애굽에서 아무런 희망 없이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내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스스로 피조물과 언약을 맺으신다. 레위기 26장 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조건을 붙이신다.
* 편무계약?
[편무계약은 증여의 경우와 같이 당사자 일방만이 급부를 하고, 상대방은 이에 대응하는 반대급부를 하지 않는 계약을 말한다. 이것은 쌍무계약과는 달리 동시이행(同時履行)의 항변권(抗辯權)이나 위험부담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법률용어사전, 2011. 1. 15., 법문북스)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지키면 그들의 삶에 복을 주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지키시겠다는 조건적 약속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런 표현들 때문에 (출 15:26,19:5;레 26:3;대상 28:7;겔 20:13;신 4:1 등)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있음을 종종 발견한다. “하나님은 내가 약속을 지켜야 복을 주시는 분이야”, “내가 신앙을 잘 지켜야 기도를 응답받아”, “열심히 기도해야 하나님은 들으셔”
성부 하나님이 인간과 맺는 언약의 내용과 특징을 규정하는 데 있어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놓치면 성경이 말하는 “언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겠다.”라고 말씀하실 때의 상황을 생각해보라. 400년이 넘는 이집트 포로생활을 경험한 그들은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 앞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예배가 무엇인지, 구별된 백성의 가치가 무엇인지, 어느 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이 부르시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가 ‘일상’이 되어 자신들의 죄악에 스스로 망할 자들이었다. 창조주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 그들의 모습을 모르고 기대하셨다는 말인가?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편 103:13-14)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앞에 완전하게 살지 못함을 아신다. 우리가 반복되는 죄악 앞에서 종종 무너지고 죄책감에 빠져 괴로워하는 약한 존재임을 아신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이시고 그 길을 더디고 부족하게나마 걸으며 하나님의 백성 된 영광이 무엇인지, 인생의 가치가 어디에 담기는가를 알아가게 하시기 위함이다. 욕망과 파괴와 나약함에 익숙한 일상을 살아가는 죄인들에게 스스로 하나님이 되시기를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언약)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하나님이 완성하시는 위대함이다. 그 위대한 구속 역사의 동반자로 우리를 초대하시고 자녀 되게 하셔서 구원의 열매를 주인 된 자격으로 갖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내 백성이 내게서 떠나기로 결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종의 멍에를 씌웠다.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어도 그 멍에를 벗겨 줄 자가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아, 내가 어떻게 너를 포기할 수 있으며 내가 어떻게 너를 버릴 수 있느냐? 어떻게 내가 너를 아드마같이 대할 수 있으며 어떻게 너를 스보임처럼 되게 할 수 있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니 네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불붙듯 일어나는구나. 내가 다시는 나의 분노로 너를 벌하지 않고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을 멸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와 함께 하는 거룩한 자이므로 내가 분노로 너에게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호세아 11:7-9)
스스로 진리와 자유를 떠나 탕자와 같이 아버지의 품을 떠나는 우리를 보시면서, 우리가 죄를 향해 달려갈 때, 우리의 무지와 악함이 창조주의 마음을 거역할 때 절규하는 아버지의 음성이다. 당신과 내가 하나님의 백성됨은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하기 때문이 아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야곱에게 약속하신 하나님,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스스로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이 오늘 당신과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여전히 묶고 있는 위대한 현실을 봐야 한다. 하나님과 연합하여 그분의 백성이 되는 성도의 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맺으신, 그 편무계약으로 인해 오늘도 유효하다. 그 영광의 길에 선 자로서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의 성숙이며 구원의 길이다. 우리의 어떠함으로 인해 포기되지 않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그리고 우리의 그분의 백성됨을 굳게 붙잡고 다시 일어나 “오늘”을 “순종”으로 살아가는 나와 당신이 되기를 하나님은 여전히 기대하고 계신다.
십대교회 박준형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