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 Bible 4
“솔로몬의 일천 번제” 봉헌과 기도, 그리고 응답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그 날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주랴 너는 구하라 하시니 솔로몬이 하나님께 말하되 주께서 전에 큰 은혜를 내 아버지 다윗에게 베푸시고 내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주는 내 아버지 다윗에게 허락하신 것을 이제 굳게 하옵소서 주께서 나를 땅의 티끌 같이 많은 백성의 왕으로 삼으셨사오니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하니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하시니라” (역대하 1:6-12)
“솔로몬이 천 마리 희생제물을 드렸다. 하나님께 구했다. 하나님께서 주셨다. 그래서 우리도 제물을 천 번 드리면서 구한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이해하고 적용하는 ‘일천번제’의 내용이다. 그러나 위에 성경 본문을 잘 살펴보면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 다른 맥락을 크게 두 가지 찾을 수 있다.
1. 솔로몬의 일천 번제는 천 번 제물을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한 나라의 왕으로서 천 마리의 희생제물을 드린 사건이었다.
2. 솔로몬이 받은 것은 그가 구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결정하신 것이었다.
일정한 금액을 정해놓고 이를 천 번에 나누어 내는 모습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은 그러한 ‘일천번제’를 우리에게 제시하지 않는다. 많이, 꾸준히 바치는 정성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겠다는 인간의 종교성을 발견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이 종교성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만나는 데 있어 가장 우리를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동시켜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고 순종하는 대상이다.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열왕기상 3:11에서는 백성을 잘 다스리기 원하는 솔로몬의 “마음”(레바베카)을 강조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이며, 그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바른 이해, 그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응답이다.
솔로몬에게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지식, 부와 재물과 영광”은 하나님의 결심으로 솔로몬 왕에게 주어진 ‘선물’이었다. 세상에서 자랑하고 드러낼 수 있는 ‘부와 재물과 영광’은 솔로몬이 구해서 받은 응답이 아니었다. 솔로몬이 구한 내용은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섬겨야 할 대상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이었다. 당시에 왕이 해야 하는 역할 중의 하나는 백성들의 송사를 판결하는 일이었다. 열왕기상 3장에서는 하나님의 응답 이후에 바로 한 아기를 데려온 두 여인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여인들에게 솔로몬은 아이를 반으로 잘라서 주라고 명령한다. 그러자 한 여인은 아이를 포기하고, 한 여인은 아이를 반으로 잘라서라도 달라고 해서 친모(親母)를 찾는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솔로몬이 구한 기도의 응답을 통해 유익을 얻은 백성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성도의 기도는 역설적으로 ‘타인(他人)’을 유익하게 한다. 그러나 그 ‘타인’은 타인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나’를 포함한 ‘서로’가 되는 비밀이 있다. 나의 기도와 섬김을 통해 ‘너’가 유익을 얻고, 너의 섬김과 기도를 통해 ‘나’라는 존재가 세워지는 비밀이 성경 곳곳에 담겨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묶여진 이웃을 위해 구하는 피조물의 믿음과 성숙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오늘 나와 당신이 드릴 일천번제는 무엇이겠는가?